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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저택을 식민지 조선으로 옮기면: 〈아가씨〉가 소설 〈핑거스미스〉를 바꾼 법

memo35371 2026. 9. 13. 15:49

영국 저택을 식민지 조선으로 옮기면: 〈아가씨〉가 소설 〈핑거스미스〉를 바꾼 법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는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Fingersmith)〉(2002)를 원작으로 합니다. 그런데 두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단순히 등장인물의 국적과 시대만 바꾼 각색이라고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원작의 무대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입니다. 영화는 이야기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옮겼습니다. 이 이동으로 원작의 핵심이었던 계급, 사기, 욕망, 여성 간의 사랑에 식민지 지배와 민족, 언어, 문화적 모방이라는 새로운 권력관계가 들어옵니다.

박찬욱은 원작의 반전 구조를 상당 부분 보존하면서도, 그 구조를 작동시키는 사회적 조건을 바꿨습니다. 그래서 〈아가씨〉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핑거스미스〉의 줄거리를 얼마나 충실하게 옮겼는가"보다 "영국에서 조선으로 장소를 옮기자 같은 사건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핑거스미스〉와 〈아가씨〉, 무엇이 그대로 남았나

두 작품의 기본적인 이야기 장치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젊은 여성이 부유한 여성의 집에 하녀로 들어갑니다. 사기꾼 남자는 상속 재산을 노리고 있으며, 하녀는 그의 계획에 협력합니다. 하지만 하녀와 주인 여성 사이에 예상하지 못한 감정이 생깁니다. 독자가 진실을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점이 바뀌고, 앞에서 본 사건의 의미가 뒤집힙니다.

즉, 각색 후에도 중요한 골격은 남아 있습니다.

〈핑거스미스〉〈아가씨〉핵심 기능

빅토리아 시대 영국 1930년대 식민지 조선 시대적 권력관계 설정
수 트린더 숙희 하녀이자 사기 계획의 참여자
모드 릴리 히데코 재산을 가진 채 통제당하는 여성
젠틀먼 후지와라 백작 결혼과 재산을 노리는 사기꾼
브라이어 저택 코우즈키의 저택 고립과 지배가 이루어지는 공간
시점 전환과 반전 시점 전환과 반전 관객의 판단을 뒤집는 장치

박찬욱 역시 BAFTA 강연에서 〈핑거스미스〉의 핵심 아이디어와 주제를 가능한 한 유지하려 했다는 취지로 자신의 각색 방식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골격을 유지한다는 것은 의미까지 그대로 유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아가씨〉의 특징은 같은 이야기 구조에 다른 역사적 압력을 가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왜 하필 일제강점기 조선이었을까

영화가 원작의 영국 배경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은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박찬욱은 영화화를 결정한 뒤 BBC가 이미 〈핑거스미스〉를 드라마로 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을 배경으로 다시 만들 경우 기존 BBC판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결국 이야기를 한국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배경 변경은 단순한 차별화 전략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작진은 근대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1930년대 조선에서 원작과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권력관계를 발견했습니다. 박찬욱은 당시를 근대 문화와 문명이 조선에 유입되던 시기로 설명하면서, 이러한 시대적 조건이 영화 속 코우즈키와 그의 저택을 만드는 기반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그 결과 원작에는 없던 중요한 축 하나가 생깁니다.

계급 차이 + 성별 권력 + 재산 문제에 식민지의 지배·피지배 관계가 추가됩니다.

특히 숙희는 조선인이고 히데코는 일본인입니다.

박찬욱은 이 설정을 통해 두 여성의 사랑 앞에 원작보다 하나의 장벽을 더 놓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원작에서 두 사람은 계급 차이와 서로를 속여야 하는 상황을 넘어야 했다면, 영화에서는 여기에 서로 적대하는 두 민족에 속해 있다는 조건까지 더해집니다.

그래서 〈아가씨〉에서 식민지 시대는 화려한 의상과 건축물을 보여주기 위한 배경만은 아닙니다. 사랑과 배신이 이루어지는 조건 자체를 변화시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사실 '저택'에서 보인다

〈아가씨〉의 각색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공간이 코우즈키의 저택입니다.

〈핑거스미스〉에서도 저택은 중요합니다. 외부 세계에서 떨어져 있고, 젊은 여성이 남성 보호자의 통제 아래 살아가는 폐쇄적인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가씨〉의 저택에는 또 다른 의미가 붙습니다.

건물 자체가 서양식과 일본식의 기묘한 혼합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미술적 취향이 아닙니다. 박찬욱은 저택의 구조가 코우즈키라는 인물의 욕망을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일본과 서양 문화를 숭배하지만 정작 조선적인 것에는 거리를 둡니다. 영화 속 건축은 따라서 한 사람의 취향인 동시에 식민지 시대의 문화적 권력관계를 시각화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코우즈키가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지배자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모방하고 그것을 자신의 지위와 욕망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서양식 옷과 일본식 옷을 오가며, 일본 문화와 서양 문화에 대한 동경을 자신의 저택 안에 물리적으로 결합합니다.

따라서 저택은 세 가지 공간으로 동시에 읽힙니다.

  • 히데코를 가두는 가부장적 감옥
  • 음란 서적과 낭독을 통해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 욕망의 무대
  • 일본과 서양을 숭배하는 코우즈키의 욕망이 구현된 식민지 문화의 축소판

영국 저택을 조선으로 옮겼더니 단순히 한옥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건축 자체가 식민지 권력을 설명하는 장치가 된 셈입니다.

모드가 히데코가 되면서 달라진 것

원작의 모드와 영화의 히데코는 모두 부유하지만 자유롭지 않습니다.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두 여성에게 곧 권력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 남성들은 그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여성의 결혼과 정신 상태, 행동을 통제하려 합니다.

그러나 히데코에게는 원작에 없는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이 더해집니다.

여기서 영화의 권력관계가 복잡해집니다.

숙희는 식민지 조선인이고 히데코는 일본인입니다. 국가와 민족의 관계만 보면 히데코 쪽이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저택 안에서는 히데코 역시 코우즈키에게 철저하게 통제되고 착취당합니다.

따라서 영화는 단순한 대응식을 만들지 않습니다.

일본인 = 지배자, 조선인 = 피해자라는 하나의 축만으로 등장인물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숙희는 피식민지인인 동시에 히데코를 속이러 들어온 사람입니다. 히데코는 식민 지배국 출신이지만 저택에서는 착취당합니다. 조선인 코우즈키는 일본 제국의 문화를 숭배하며 다른 사람을 지배합니다. 후지와라는 일본식 귀족 이름을 사용하지만 그 정체성 자체가 사기의 일부입니다.

이 복잡한 배치 덕분에 〈아가씨〉에서 '누가 누구를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장면마다 달라집니다.

언어도 권력이 된다

배경을 식민지 조선으로 바꾸면서 영화에는 원작에서 만들기 어려웠던 또 하나의 표현 수단이 생겼습니다.

바로 한국어와 일본어의 공존입니다.

인물들은 상황과 상대에 따라 언어를 바꿉니다. 그래서 관객은 대사의 내용뿐 아니라 누가 어떤 언어를 선택하고 있는지까지 보게 됩니다.

이것은 〈아가씨〉에서 정체성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보여주는 장치와도 연결됩니다.

후지와라는 '백작'이라는 신분부터 연기하고 있습니다. 숙희 역시 진짜 목적을 숨긴 채 하녀 역할을 수행합니다. 히데코도 남성들이 요구하는 순종적인 아가씨의 모습을 연기해야 합니다.

즉 이 영화에서 이름, 옷, 신분, 언어는 모두 고정된 정체성이라기보다 상황에 따라 입고 벗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식민지라는 설정은 원작의 사기극을 이런 문화적 위장까지 확장합니다.

두 작품 모두 '누구의 이야기인가'를 뒤집는다

〈핑거스미스〉의 가장 강력한 장치 가운데 하나는 시점 전환입니다.

처음에는 한 인물이 알고 있는 정보만 독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 인물의 판단을 믿습니다. 이후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사건을 다시 보면서 앞서 확신했던 사실이 무너집니다.

〈아가씨〉 역시 이 구조를 적극적으로 유지합니다.

1부에서 관객은 주로 숙희가 알고 있는 정보를 따라갑니다. 이후 히데코의 관점이 제시되면서 같은 행동과 대사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여기서 반전은 단순히 "사실 범인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식의 정보 공개와 다릅니다.

누가 주체이고 누가 이용당하는 대상인지에 대한 관객의 판단 자체를 뒤집습니다.

하녀가 아가씨를 속이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계획이 나타나고, 다시 그것을 뒤집는 관계가 등장합니다.

이 구조 때문에 두 작품에서 사랑도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방마저 사기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두 사람이 결국 남성들이 설계한 거래에서 이탈하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원작보다 '탈출'의 방향을 바꾼다

두 작품에서 여성 간의 사랑은 단순한 로맨스의 추가 요소가 아닙니다.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재산과 결혼의 거래를 깨뜨리는 힘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이 부분을 더욱 시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밀어붙입니다.

히데코를 지배했던 공간과 물건, 특히 남성들의 성적 소비를 위해 존재하던 것들이 파괴됩니다. 두 여성의 관계는 저택 내부의 비밀스러운 감정에서 끝나지 않고 그 공간 자체를 벗어나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남성 인물들은 자신들이 만든 욕망의 세계에 남습니다.

이 차이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특히 선명합니다.

저택을 중심으로 서로를 속이던 이야기였던 영화가 마지막에는 누가 저택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가의 문제로 변합니다.

그래서 〈아가씨〉에서 탈출은 물리적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가부장제와 계급뿐 아니라 식민지 시대가 만들어낸 신분, 이름, 언어와 문화적 역할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까지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원작에 없던 '복수'가 들어온 이유

〈아가씨〉와 〈핑거스미스〉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박찬욱은 인터뷰에서 복수는 원작에 없던 자신의 요소라고 직접 언급했습니다.

이 변화는 감독의 기존 영화 세계와도 연결되지만, 〈아가씨〉 안에서는 구조적인 역할을 합니다.

원작에서 가져온 사기와 반전의 이야기가 영화에서는 후반부로 갈수록 억압을 만들어낸 남성들에게 그 폭력이 되돌아가는 이야기와 결합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가씨〉는 원작의 결말을 단순히 영화적으로 더 자극적으로 만든 작품이라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사랑의 성공과 억압자의 몰락을 더욱 강하게 연결하면서 영화만의 해방 서사를 만들어 냅니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남겼는가

두 작품의 차이를 정리하면 박찬욱의 각색 방식이 분명해집니다.

요소유지 또는 변화〈아가씨〉에서 생긴 효과

두 여성과 사기꾼의 기본 관계 유지 원작의 서스펜스 보존
다중 시점과 반전 유지 관객의 판단을 반복해서 수정
계급 차이 유지 하녀와 아가씨의 관계 유지
빅토리아 시대 영국 변경 식민지 조선의 역사적 갈등 추가
인물의 국적 변경 조선인·일본인의 관계가 새로운 장벽으로 작동
영국 저택 대폭 재구성 일본·서양 문화 숭배와 식민지 욕망의 시각화
언어 확장 한국어·일본어를 통해 정체성과 권력 표현
복수 강화·추가 박찬욱 영화 특유의 응징 구조 형성
여성들의 탈출 재구성 사랑과 해방의 의미를 보다 직접적으로 연결

이 표에서 중요한 것은 '원작에 충실한 부분'과 '원작을 배반한 부분'을 단순히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아가씨〉는 원작의 핵심 구조를 남겨두었기 때문에 오히려 배경 변경의 효과가 선명해집니다.

같은 사기, 같은 계급 차이, 비슷한 반전이 전혀 다른 역사적 공간에서 반복될 때 그 사건에 새로운 의미가 붙기 때문입니다.

좋은 각색은 장소만 옮기지 않는다

〈아가씨〉를 "한국판 〈핑거스미스〉"라고 부르는 것은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충분한 설명도 아닙니다.

박찬욱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이야기를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옮기면서 원작의 핵심인 계급, 욕망, 기만, 여성 간의 사랑과 시점의 반전을 유지했습니다. 동시에 원작에 없었던 식민 지배, 민족적 차이, 문화적 모방, 이중 언어, 복수를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특히 코우즈키의 저택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영국식과 일본식 건물이 결합된 그 기묘한 집은 원작의 저택을 한국에 그대로 복제한 공간이 아닙니다. 일본과 서양을 동경하고 모방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구축하는 식민지 엘리트의 세계관을 건축으로 만들어 놓은 공간입니다. 박찬욱은 당시 일부 조선인 지식인들이 일본과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양 문화에 매혹됐다는 점을 영화의 인물과 공간에 반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아가씨〉의 각색에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원작과 무엇이 다른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같은 이야기가 다른 역사 속으로 들어가면, 무엇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는가?

〈핑거스미스〉에서 저택은 계급과 가부장적 통제의 공간이었습니다. 〈아가씨〉에서 그 집은 여전히 그런 공간이지만 동시에 식민지의 문화적 욕망까지 품습니다.

수는 숙희가 되고, 모드는 히데코가 됩니다. 사기꾼은 후지와라 백작이 되고 영국의 저택은 일본식과 서양식이 뒤섞인 기괴한 저택으로 변합니다.

줄거리의 뼈대는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뼈대를 둘러싼 세계가 달라지자 사랑을 가로막는 장벽도, 남성들이 욕망을 행사하는 방식도, 두 여성이 그 세계에서 탈출한다는 것의 의미도 달라졌습니다.

그 점에서 〈아가씨〉는 원작을 충실하게 복제한 영화라기보다, 〈핑거스미스〉의 이야기 구조를 식민지 조선이라는 새로운 역사적 조건에 넣어 다시 작동시킨 각색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