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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질문을 영화의 행동으로 바꾸다: 〈26년〉의 각색

mystory15755 2026. 10. 6. 08:34

만화의 질문을 영화의 행동으로 바꾸다: 〈26년〉의 각색

강풀의 웹툰 **〈26년〉**과 조근현 감독의 영화 **〈26년〉**은 같은 인물과 같은 사건을 공유하지만, 이야기를 작동시키는 방식은 상당히 다릅니다. 웹툰이 1980년 5월의 기억을 현재로 끌어와 **“책임이 충분히 묻히지 않은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오래 붙잡는다면, 영화는 그 질문을 구체적인 작전과 선택, 실패의 순간으로 압축합니다.

그래서 영화 〈26년〉의 각색은 원작의 줄거리를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했는가만으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만화가 독자에게 던진 질문을 영화가 인물들의 행동으로 어떻게 번역했는가입니다.

※ 아래 내용에는 웹툰과 영화 〈26년〉의 주요 전개와 결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웹툰과 영화가 공유하는 출발점

원작 〈26년〉은 강풀이 그린 웹툰으로, 현재도 카카오웹툰에서 작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를 바탕으로 조근현 감독이 연출했으며 2012년 11월 29일 개봉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러닝타임은 135분이며 진구, 한혜진, 임슬옹, 배수빈, 이경영, 장광 등이 출연합니다.

이야기의 기본 설정은 강렬합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가족을 잃거나 그 사건으로 삶이 바뀐 사람들이 26년 뒤 모여, 당시의 책임자를 연상시키는 **‘그 사람’**을 단죄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영화는 이 설정을 액션과 드라마의 형태로 전개합니다.

다만 〈26년〉은 5·18 민주화운동의 전 과정을 재현하는 역사영화라기보다, 실제 역사적 사건 이후의 시간을 배경으로 만든 가상의 복수극에 가깝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자체의 역사적 사실은 국가기록원이 당시 기록과 이후 보상·진상 규명 관련 자료를 별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원작과 영화가 공유하는 것은 ‘복수’라는 사건보다, 과거가 끝나지 않았을 때 다음 세대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과거’와 ‘현재’의 비중이다

웹툰에서 영화로 넘어오며 가장 먼저 달라지는 것은 시간의 사용법입니다.

제작자 최용배는 이후 인터뷰에서 원작 〈26년〉은 과거와 현재의 비중이 각각 상당했지만, 영화가 현재에 초점을 맞추면서 인물 설명을 충분히 담기 어려웠다고 회고했습니다.

영화가 취한 해결법 가운데 하나가 초반의 애니메이션입니다. 영화에서 1980년 광주의 희생을 보여주는 부분은 실사 재연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됐습니다. 조근현 감독은 각색 과정에서 이 방식을 결정했다고 설명했고,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오돌또기가 참여했습니다.

이 선택은 단순히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장치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웹툰에서는 독자가 여러 컷과 인물의 기억을 따라가며 과거에 머물 수 있습니다. 스크롤을 멈추고 한 장면을 오래 바라보는 것도 독자의 선택입니다. 반면 영화는 135분 안에서 이야기의 현재와 작전을 전진시켜야 합니다.

따라서 영화는 긴 기억의 층위를 초반에 압축하고, 그 기억에서 발생한 결과를 현재 인물들의 몸에 남깁니다.

웹툰에서 중요한 것이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되짚는 과정이라면, 영화가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기억을 읽는 이야기에서 D-Day를 기다리는 이야기로

두 작품의 차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비교 지점웹툰 〈26년〉영화 〈26년〉

중심 동력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질문 단죄 계획과 작전 수행
시간 감각 회상과 현재가 길게 교차 현재의 작전에 집중
인물 구성 주변 인물과 관계까지 비교적 폭넓게 전개 핵심 작전 인물 중심으로 압축
긴장 형성 정보가 축적되며 질문이 커짐 목표·장애물·실행이라는 액션 구조
결말 효과 총성과 함께 판단을 독자에게 남김 작전의 결과를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
수용자의 위치 질문을 곱씹는 독자 작전의 성공과 실패를 지켜보는 관객

영화에서는 곽진배, 심미진, 권정혁, 김주안, 김갑세가 각자 다른 능력과 위치를 가진 채 하나의 계획으로 결합합니다.

조근현 감독 역시 각색과 연출에서 곽진배·심미진·권정혁·김주안의 역할과 비중을 고르게 배치하려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결과 인물들은 각자의 과거를 설명하는 주체인 동시에 작전에 필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심미진의 사격 능력은 트라우마를 설명하는 설정에 머물지 않고 저격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경찰인 권정혁의 직업은 내부와 외부 사이의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곽진배의 물리적 행동력 역시 실제 작전 과정에서 의미를 얻습니다.

즉 영화는 인물의 상처를 행동 가능한 능력으로 전환합니다.

이것이 웹툰에서 영화로 이동하며 발생한 가장 영화적인 변화입니다.

인물을 줄이는 것은 분량을 줄이는 것 이상의 변화다

영화화에서는 원작의 일부 인물이 사라지거나 비중이 축소됩니다.

원작에서 ‘그 사람’의 흉상을 제작하는 조각가 이치영과 그의 아내인 역사교사 한선영은 영화에서 빠졌고, 원작 후반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마상길 역시 영화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감소했습니다. 반대로 곽진배와 심미진 사이의 감정 관계는 원작보다 영화에서 더 부각됩니다.

이런 변화는 각색에서 흔히 일어나는 ‘삭제’이지만, 〈26년〉에서는 작품의 의미에도 영향을 줍니다.

인물이 많아질수록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기억과 태도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시간 남짓한 영화에서는 각각의 인물을 충분히 설명할수록 작전의 속도가 느려집니다.

영화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원작이 가진 사회적 관계망의 일부가 줄어드는 대신, 관객은 주요 인물 몇 명을 따라가며 작전의 진행을 보다 쉽게 파악하게 됩니다.

이 선택에는 분명한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은 목표가 명확해진다는 점입니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실패하면 전체 계획이 무너지는지가 눈에 보입니다.

반면 손실도 있습니다. 인물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원작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이 문제가 몇 사람의 개인적 원한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확장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습니다.

당시 씨네21의 영화평 역시 영화가 작전을 전개하는 데 집중하면서 인물들이 한 팀이 되는 과정이나 그들 사이의 교감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웹툰의 ‘물음표’를 영화는 몸으로 보여준다

웹툰과 영화의 매체 차이는 특히 폭력의 표현에서 커집니다.

만화에서 총을 겨누는 장면은 하나의 이미지로 정지할 수 있습니다. 총을 쏠 것인지, 쏜다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복수가 정당한지와 같은 질문이 한 컷 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총을 들면 다음 숏이 필요합니다.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

누군가 이를 막을 것인가.

총알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 결과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영화는 질문을 계속 정지시킬 수 없습니다. 행동을 발생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26년〉의 영화화 과정에서 ‘단죄할 것인가’라는 추상적인 질문은 차량의 이동, 저격 위치의 확보, 경찰의 통제, 경호원과의 충돌, 총격 같은 물리적 사건으로 번역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정치적·윤리적 질문을 장르영화의 긴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수행합니다.

관객은 단순히 “복수는 옳은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는가”를 기다리게 됩니다.

이 변화가 바로 영화 〈26년〉의 힘인 동시에 위험입니다.

장르적 긴장이 강해질수록 역사적 질문은 쉽게 ‘성공해야 하는 작전’이라는 문제로 단순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행동이 구체화되기 때문에 원작의 질문이 더 직접적인 감각으로 전달되는 효과도 있습니다.

〈26년〉의 각색은 이 두 가능성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결정적인 각색은 결말에서 일어난다

원작과 영화의 차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은 결말입니다.

웹툰은 심미진의 마지막 총성과 함께 결과를 확정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마무리됩니다. 독자는 마지막 순간 이후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스스로 상상해야 합니다.

영화는 다릅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그 사람’의 차량이 이동하는 모습을 제시하며 작전이 성공하지 못했음을 보다 분명하게 암시합니다.

개봉 당시 조근현 감독도 영화의 결말이 원작과 다르다고 밝히면서, 자신이 중요하게 본 것은 결과보다는 주인공들이 왜 그런 선택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변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원작의 열린 결말은 마지막 총성을 질문으로 남깁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 한 발로 역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결말을 원하는가?’

반면 영화는 작전을 실패시키면서 질문의 방향을 바꿉니다.

한 사람을 제거하는 것으로 끝낼 수 없는 문제라면,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조근현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김갑세가 끝까지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죽음보다 진심 어린 사과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따라서 영화의 실패한 작전은 단순한 ‘배드 엔딩’이라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단죄의 판타지를 완성하지 않음으로써 이야기를 다시 현실의 미해결 상태로 되돌려놓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액션이 커질수록 질문은 단순해졌는가

영화 〈26년〉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있습니다.

원작보다 훨씬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지만, 그만큼 원작이 가진 복잡한 질문의 일부는 압축됩니다.

웹툰에서는 독자가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그들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상상하게 되었는지 천천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작전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시간 압박이 커집니다.

누가 배신하는가.

누가 막는가.

사격에 성공하는가.

경호를 뚫을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앞쪽으로 나오면서 작품은 정치적 기억극인 동시에 본격적인 작전 스릴러의 형태를 갖게 됩니다.

이 때문에 영화의 속도감은 높아지지만, 어떤 관객에게는 인물들의 행동이 충분히 축적되기 전에 거사로 향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실제 개봉 당시 비평에서도 영화의 에너지가 인물 간 관계보다 작전 진행과 작품이 참조하는 현실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원작보다 얕아졌다’고 정리하기도 어렵습니다.

영화가 선택한 것은 다른 종류의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웹툰이 기억하게 하는 매체라면 영화는 그 기억 때문에 움직이는 몸을 보여주는 매체가 됩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해 실사 액션으로 넘어가는 이유

영화의 형식에서도 이 구조는 드러납니다.

1980년의 참혹함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시되고, 26년 뒤의 행동은 실사로 전개됩니다.

이를 각색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경계입니다.

과거는 기억의 이미지이고, 현재는 행동의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은 영화 전체와 시각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관객에게 “이 사건이 지금의 모든 행동보다 먼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각인합니다. 이후 화면이 실사로 바뀌면 과거 자체를 반복해서 재현하기보다 과거가 남긴 결과를 현재의 인물들에게서 확인하게 됩니다.

곽진배의 분노, 심미진의 냉정함, 권정혁의 갈등, 김갑세의 죄책감은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모두 1980년과 연결됩니다.

이렇게 보면 영화의 구조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과거의 폭력 → 기억과 상처 → 26년 뒤의 인물 → 단죄 계획 → 실패 → 다시 남겨진 질문

영화는 이 사슬을 빠르게 연결합니다.

영화 제작 과정도 작품의 의미와 분리하기 어렵다

〈26년〉을 이야기할 때 독특한 제작 과정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영화화는 여러 차례 추진과 중단을 거쳤고, 실제 제작 단계에서는 시민들이 제작비에 참여하는 ‘제작두레’ 방식이 사용됐습니다. 2012년 보도에 따르면 1만 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해 수억 원 규모의 제작비가 모였습니다.

원작자 강풀은 영화 각색이나 캐스팅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밝혔고, 영화는 감독의 작품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은 〈26년〉을 ‘강풀 만화를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조근현 감독은 자신에게 웹툰뿐 아니라 이전에 만들어졌던 이해영 감독의 시나리오도 또 하나의 원작처럼 존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제작비와 준비 기간이라는 현실적 조건 속에서 기존 시나리오를 해체하고 다시 구성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즉 영화 〈26년〉은 하나의 원작에서 곧바로 나온 결과물이 아닙니다.

웹툰 → 초기 영화화 시나리오 → 제작 중단과 재추진 → 새로운 각색 → 실제 제작 조건

이라는 여러 층을 거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각색은 텍스트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작 현실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원작에 충실한가’보다 중요한 질문

웹툰 원작 영화는 흔히 원작 재현도를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캐릭터가 같은가.

명장면을 살렸는가.

결말이 바뀌었는가.

하지만 〈26년〉에서는 조금 다른 기준이 더 유용합니다.

원작이 무엇을 질문했고, 영화가 그 질문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만들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그 기준으로 보면 영화는 상당한 변화를 선택했습니다.

웹툰의 긴 과거를 압축했고, 인물을 줄였으며, 작전의 기능을 강화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1980년을 별도의 기억 공간으로 만들었고, 현재의 이야기는 실사 액션으로 밀어붙였습니다. 무엇보다 원작의 열린 마지막 총성을 그대로 두지 않고 작전의 결과를 보다 명시적으로 보여줬습니다.

따라서 영화 〈26년〉은 원작을 복제하지 않습니다.

원작의 물음표를 가져와 동사로 바꿉니다.

기억한다.

모인다.

계획한다.

겨눈다.

실패한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바로 이 마지막 단계 때문에 영화는 액션영화의 구조를 갖추면서도 단순한 복수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26년〉의 각색이 남긴 것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서 〈26년〉의 누적 관객은 약 296만 명으로 집계됩니다. 흥행 규모와 별개로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웹툰의 영화화가 무엇인지 비교하기 좋은 사례라는 데 있습니다.

각색은 원작의 내용을 줄이는 작업만이 아닙니다.

매체가 달라지면 질문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강풀의 웹툰은 독자가 페이지와 스크롤 사이에서 멈추어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조근현의 영화는 그 생각을 인물들의 구체적인 움직임과 충돌로 전환합니다.

그래서 두 작품의 차이를 가장 짧게 표현한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웹툰 〈26년〉이 “우리는 이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영화 〈26년〉은 “그 기억을 가진 사람은 결국 무엇을 하게 되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영화가 작전을 끝내 성공시키지 않는 순간, 행동은 다시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그 순환이야말로 〈26년〉의 각색을 단순한 원작 재현과 구분하게 만드는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