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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웹툰의 느슨한 청춘을 빠른 영화로 옮기면: 〈시동〉의 인물 변화

by mystory15755 2026. 10. 1.

웹툰의 느슨한 청춘을 빠른 영화로 옮기면: 〈시동〉의 인물 변화

조금산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시동〉**은 가출한 택일과 사회에 먼저 뛰어든 상필이 각자의 방식으로 어른들의 세계를 경험하는 성장담입니다. 2019년 12월 18일 개봉한 영화는 박정민이 택일, 정해인이 상필, 마동석이 거석이형, 염정아가 택일의 엄마 정혜를 맡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원작을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뜯어고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최정열 감독은 원작의 방향과 정서를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만화에서는 오래 머무를 수 있었던 인물의 상태와 관계를 영화의 제한된 시간 안에서 더 빨리 읽히도록 바꿨습니다.

그래서 웹툰과 영화를 비교할 때 단순히 “무엇이 삭제됐는가”보다 인물이 어떤 기능을 하도록 재배치됐는가를 살펴보는 편이 더 흥미롭습니다.

원작의 힘은 ‘큰 사건이 없는 시간’에 있다

〈시동〉의 원작은 전형적인 성장물처럼 하나의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작품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택일은 뚜렷한 꿈이 있어서 집을 떠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공부하기도 싫고, 집에 있기도 싫고, 그렇다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영화에서도 그는 단돈 몇 만원을 들고 집을 나와 우연히 도착한 곳에서 중국집 배달 일을 시작합니다.

이런 인물에게 중요한 것은 목표 달성보다 시간을 견디는 과정입니다.

씨네21 역시 원작을 두고 캐릭터는 강하지만 굵직한 사건이 많지 않아 영화화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영화 역시 에피소드의 잔가지를 덜어냈을 뿐, 억지로 거대한 사건을 추가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웹툰에서는 이 느슨함 자체가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택일이 일하고, 싸우고, 밥을 먹고, 사람과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는 시간을 여러 화에 걸쳐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독자는 그가 처음과 조금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없습니다.

웹툰이 ‘살다 보니 변해 있는 사람’을 보여준다면, 영화는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시동〉의 각색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택일: 방황하는 시간이 ‘선택하는 과정’으로 압축된다

택일은 영화에서도 여전히 목표 없는 청춘입니다.

공부가 싫어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비로 중고 오토바이를 샀다가 실패하고, 엄마와 싸운 뒤 무작정 집을 떠납니다. 군산에 도착한 것도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장풍반점에서 일하게 된 것 역시 인생을 바꿀 직업을 찾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런데 영화 속 택일에게는 원작보다 분명한 변화의 리듬이 생깁니다.

처음의 택일은 대부분의 일을 거부합니다.

엄마가 원하는 삶도 싫고, 학교도 싫고, 자신에게 간섭하는 어른도 싫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지 않는가입니다.

장풍반점 생활은 그 상태를 조금씩 뒤집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배달을 하고, 자신과 전혀 관계없던 사람들의 사정을 알게 되고, 필요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한동안 그곳에 남습니다.

즉 택일의 성장은 거창한 꿈을 발견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망치는 것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의 차이를 배우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최정열 감독도 영화의 인물들을 두고 ‘어울리는 일을 아직 찾지 못한 사람’,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음을 깨닫는 사람, 하다 보니 자신의 일이 된 사람 등 여러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영화가 말하는 출발은 하나의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잘못 출발했다면 다시 시동을 걸 수 있다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택일은 원작보다 조금 더 전통적인 영화 주인공이 됩니다.

방황 자체보다 방황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가 빠르게 보입니다.

상필: ‘다른 길을 택한 친구’의 기능이 훨씬 선명해진다

상필은 택일과 함께 봐야 의미가 커지는 인물입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자리에서 출발합니다. 학교 밖에 있고, 돈도 필요하며, 사회가 정해놓은 안정적인 경로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선택은 달라집니다.

택일은 우연히 중국집에 들어가 노동과 공동생활을 경험하고, 상필은 고리금융업체에서 일하며 빠른 돈과 힘의 세계에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상필도 그 생활을 제법 만족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이 두 갈래는 영화에서 일종의 평행 편집된 성장 실험처럼 작동합니다.

택일상필

집을 떠난다 동네에 남는다
중국집에서 일한다 고리금융업체에 들어간다
낯선 사람들과 생활한다 ‘형님들’의 조직에 편입된다
노동을 통해 관계를 만든다 돈과 폭력을 통해 사회를 배운다
천천히 자리를 찾는다 빠르게 어른의 세계에 진입한다

둘 다 학교 밖에서 사회를 배우지만 그 사회의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특히 영화는 상필의 주변 인물을 수정하면서 이 대비를 더욱 분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최정열 감독에 따르면 원작 후반에는 상필과 관계를 맺은 사채업자들이 변화하는 부분이 있지만, 이를 그대로 실사 영화로 옮길 경우 불법 사채업자들이 좋은 사람으로 미화되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는 원작에 없던 **동화(윤경호)**라는 인물이 추가됩니다. 조직 전체가 갑자기 선량해지는 대신, 그 안의 한 인물이 변화하는 모습을 담당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각색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

영화는 상필의 이야기를 압축하면서 동시에 도덕적 경계선을 더 분명하게 그었습니다.

즉 영화 속 상필은 단순한 ‘또 다른 주인공’이 아니라 택일이 선택할 수도 있었던 다른 성장 경로를 보여주는 인물에 가까워집니다.

거석이형: 스승이 아니라 ‘먼저 실패해본 어른’이 된다

〈시동〉을 처음 보면 거석이형은 전형적인 성장영화의 멘토처럼 보입니다.

집을 나온 소년 앞에 강한 어른이 나타나고, 그 어른이 세상의 규칙을 가르쳐주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 공식을 일부러 비틀어 놓습니다.

거석이형은 택일에게 인생의 정답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상한 옷을 입고 춤을 추고, 택일과 유치하게 싸우며, 자기 삶 역시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최정열 감독도 그를 청춘영화의 전형적인 ‘멘토’와는 다른 인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마동석의 기존 이미지가 활용됩니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거석이형이 압도적인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기대를 의도적으로 피합니다.

감독은 거석이형의 과거가 드러난 뒤에도 그의 이전 삶을 영웅적으로 미화하고 싶지 않았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마동석이 주먹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식의 쾌감도 피하려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선택 때문에 거석이형의 역할이 달라집니다.

그는 택일에게

“이렇게 살아라”

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른도 자기 삶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는 사실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택일이 그에게 배우는 것은 성공한 어른의 삶이 아니라, 실패와 과거를 안고도 다시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폭력이 줄어들면서 어른들의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원작과 영화의 인물 변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기 어려운 것이 폭력의 처리 방식입니다.

원작에는 영화보다 폭력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실사화 과정에서 감독은 같은 장면이라도 실제 배우가 맞고 때리는 모습으로 표현되면 관객에게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단순히 폭력을 삭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폭력의 양이 줄어드는 것 자체를 인물 변화로 사용합니다.

초반의 정혜는 아들을 힘으로 제압합니다.

거석이형 역시 택일에게 손을 올립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두 인물의 행동은 달라집니다.

최정열 감독은 택일이 맞아서 성장하는 이야기로 보이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오히려 택일을 때리던 정혜와 거석이형이 점차 그렇게 행동하지 않게 되는 과정 역시 성장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시동〉의 성장 주체는 청춘들만이 아닙니다.

아이를 때리던 부모도 변하고, 폭력으로 살아왔던 어른도 변합니다.

성장영화의 시선을 젊은 인물에게만 고정하지 않는 셈입니다.

정혜: ‘무서운 엄마’에서 자기 방식을 돌아보는 부모로

염정아가 연기한 정혜는 영화에서 매우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전직 배구 선수인 그는 자신에게 대드는 택일을 힘으로 제압할 만큼 강한 엄마로 설정돼 있습니다.

초반만 보면 전형적인 ‘무서운 엄마’ 캐릭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동〉은 정혜를 택일의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로만 두지 않습니다.

택일이 자신에게 맞는 삶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정혜 역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완벽하게 아는 부모가 아닙니다.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영화는 정혜가 힘으로 자식을 다루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다뤘습니다.

그래서 택일이 집을 나간 뒤 변화하는 것은 아들만이 아닙니다.

아들이 부모에게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역시 자식과 관계 맺는 방식을 수정합니다.

이 양방향 변화 덕분에 〈시동〉은 흔한 ‘철없는 아이가 정신 차리는 이야기’에서 벗어납니다.

어른에게도 수정해야 할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경주: 보호받아야 할 가출 청소년이라는 틀을 피한다

경주 역시 실사화 과정에서 표현 방식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 인물입니다.

원작에서 복싱 경험이 있는 경주가 남성들과 싸우는 장면을 영화로 옮기면서 제작진은 단순히 ‘여성이 남성들에게 맞는다’는 이미지로 보이지 않도록 조정했습니다.

감독은 경주가 수동적으로 폭력을 당하는 인물이라기보다 나쁜 사람들에게 맞서는 인물이라는 방향을 살리려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큰 영향을 줍니다.

경주는 택일이 구해줘야 하는 인물이 아니라 택일과 마찬가지로 자기 방식으로 세상과 충돌하는 청춘이 됩니다.

이는 〈시동〉이 여러 청춘을 다루는 방식과도 연결됩니다.

이 영화의 젊은 인물들은 누군가에게 교정되어야 할 문제아가 아니라, 아직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공 사장: 설명을 줄이고 공간이 인물의 과거를 대신한다

영화화에서 모든 변화가 새로운 장면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동〉은 일부 인물의 이야기를 과감하게 줄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장풍반점의 공 사장입니다.

씨네21에 따르면 원작에서는 공 사장과 장풍반점 건물에 얽힌 사연이 영화보다 상세하게 제시됩니다. 영화는 그 설명을 상당 부분 덜어내는 대신, 가정집이면서 식당이기도 한 장풍반점 공간 자체가 그의 삶을 보여주도록 구성했습니다.

웹툰에서는 대사나 에피소드 여러 개가 담당하던 정보를 영화에서는 공간, 배우의 표정, 생활 흔적으로 압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변화는 영화 각색의 핵심을 잘 보여줍니다.

영화가 빨라졌다는 것은 사건을 더 많이 넣었다는 뜻이 아니라, 설명해야 할 것을 이미지 한 장면으로 바꿨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원주의 장풍반점이 군산으로 옮겨간 이유

인물의 변화는 공간 변화와도 연결됩니다.

원작에서 장풍반점이 있는 곳은 원주지만 영화에서는 군산으로 변경됐습니다.

최정열 감독은 실제 원주를 답사했을 때 서울과 시각적으로 큰 차이를 만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택일과 상필이 서로 다른 세계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영화 화면에서 즉각 보여주려면 두 공간이 분명하게 달라 보여야 했습니다.

군산은 서울과 완전히 단절될 만큼 멀지는 않으면서도 낮은 건물과 바다가 있는 도시의 인상이 작품과 잘 맞았다고 합니다.

이 변화 덕분에 택일의 이동은 단순한 지역 이동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상필은 익숙한 동네에 남아 빠르게 ‘어른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반대로 택일은 낯선 공간으로 이동한 뒤 오히려 느린 생활을 시작합니다.

두 사람의 인생 방향이 공간 자체로 구분되는 것입니다.

웹툰보다 영화의 인물 변화가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

〈시동〉의 영화판이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를 정리하면 단순히 러닝타임 때문만은 아닙니다.

각색 방식인물에게 생기는 효과

주변 에피소드 축소 핵심 인물의 변화가 빨리 보임
택일·상필의 교차 구성 서로 다른 선택의 결과가 강조됨
동화 캐릭터 추가 상필 주변 세계의 윤리적 경계가 분명해짐
폭력 표현 조정 젊은 인물뿐 아니라 어른의 변화도 드러남
거석이형의 영웅화 억제 ‘완성된 멘토’라는 공식에서 벗어남
공 사장의 설명 축소 대사 대신 공간으로 인물의 삶을 표현
원주→군산 변경 택일과 상필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분리

특히 박정민은 원작을 좋아했던 배우였는데, 시나리오를 읽은 뒤 감독이 덜어낼 것은 덜어내면서도 원작에서 중요했던 부분을 남겼다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촬영 과정에서는 영화 관객에게 필요한 재미를 더하면서 완성작의 색깔도 조금씩 달라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시동〉의 영화화는 원작을 ‘더 극적으로’ 만드는 각색이라기보다 원작의 느린 변화를 더 빨리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드는 각색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래서 영화의 ‘시동’은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을 강조한다

〈시동〉에는 청춘영화에서 흔히 기대하는 명확한 성공담이 없습니다.

택일은 갑자기 자신의 천직을 발견하지 않습니다.

상필 역시 빠르게 돈을 벌었다고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거석이형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스승이 아니며, 정혜도 처음부터 올바른 부모가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대부분 틀린 방향으로 출발해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래서 제목인 ‘시동’이 중요해집니다.

시동을 건다는 것은 어디로 갈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일단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됐다는 뜻입니다.

웹툰은 여러 일상을 축적하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줬고, 영화는 그 시간을 두 시간 안에 압축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에피소드와 설명은 사라졌지만 택일, 상필, 거석이형, 정혜의 변화 방향은 오히려 더 또렷해졌습니다.

웹툰의 〈시동〉이 청춘이 머뭇거리는 시간을 바라보는 작품이라면, 영화 〈시동〉은 그 머뭇거림 속에서도 어느 순간 사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남는 질문도 “이들은 성공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길이 맞지 않았다면, 다시 시동을 걸 수 있는가.

〈시동〉의 인물들은 그 질문에 거창한 답 대신 한 번 더 움직여보는 것으로 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