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132

스크롤을 내리던 공포를 카메라로 옮기다: 〈이끼〉가 웹툰의 긴장감을 살린 법 스크롤을 내리던 공포를 카메라로 옮기다: 〈이끼〉가 웹툰의 긴장감을 살린 법윤태호의 웹툰 〈이끼〉를 읽을 때 생기는 공포에는 독특한 동작이 하나 끼어 있습니다. 스크롤을 내리는 행동입니다.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독자가 직접 화면을 움직입니다. 인물의 표정이 먼저 나오고, 잠시 빈 공간이 이어지고, 조금 더 내려가야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나 사건이 나타납니다. 웹툰에서는 독자가 다음 정보를 언제 확인할지 어느 정도 결정합니다.영화에는 이 스크롤이 없습니다. 관객은 감독이 정한 속도로 장면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가 해결해야 했던 문제는 원작의 장면을 얼마나 똑같이 재현하느냐보다 더 근본적이었습니다.독자가 스크롤을 내리며 느끼던 ‘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모르.. 2026. 9. 20.
일본 시골의 사계절은 어떻게 한국의 밥상이 되었나: 〈리틀 포레스트〉의 현지화 일본 시골의 사계절은 어떻게 한국의 밥상이 되었나: 〈리틀 포레스트〉의 현지화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국판은 일본 원작의 배경만 한국 농촌으로 옮긴 리메이크가 아닙니다. 계절을 먹으며 삶을 회복한다는 핵심은 남겨두고, 음식과 인간관계, 청년의 고민, 혼자 사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현실감까지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언어로 다시 구성한 작품에 가깝습니다.그래서 일본판과 한국판을 나란히 보면 흥미로운 변화가 보입니다. 일본판에서 음식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기록하는 데 가까운 반면, 한국판의 밥상은 엄마에 대한 기억과 친구들과의 관계, 그리고 혜원이 자신의 삶을 다시 선택하는 과정을 연결합니다.같은 씨앗이 다른 토양에서 어떤 맛을 내는지 보여주는 리메이크인 셈입니다.〈리틀 포레스트〉는 처음부터 ‘사계절의.. 2026. 9. 19.
7년의 죄책감을 두 시간에 담을 수 있을까: 〈7년의 밤〉의 영상화 7년의 죄책감을 두 시간에 담을 수 있을까: 〈7년의 밤〉의 영상화정유정의 소설 《7년의 밤》을 영화로 옮기는 일에는 처음부터 역설이 있습니다. 원작의 강점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이 한 인간의 내부에서 얼마나 오래 썩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시간을 123분 안에 압축해야 합니다.2018년 3월 28일 개봉한 추창민 감독의 영화 〈7년의 밤〉은 류승룡이 최현수, 장동건이 오영제, 송새벽이 안승환, 고경표가 최서원을 맡았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인되는 상영 시간은 123분입니다.따라서 이 작품의 영상화를 평가할 때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원작을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했는가”가 아닙니다.소설에서 7년에 걸쳐 축적되는 죄책감과 공포, 부성애와 폭력을 영화는 어떤 이미지와 리듬으로 바.. 2026. 9. 18.
소설 속 마지막 황녀를 영화는 어떻게 기억했나: 〈덕혜옹주〉의 각색 소설 속 마지막 황녀를 영화는 어떻게 기억했나: 〈덕혜옹주〉의 각색권비영의 소설 《덕혜옹주》와 허진호 감독의 영화 〈덕혜옹주〉는 같은 인물을 다루지만, 덕혜옹주를 기억하는 방식은 같지 않습니다. 소설이 한 여성의 생애에 쌓인 상실과 고립을 길게 따라간다면, 영화는 그 삶을 ‘귀환하지 못한 황녀’와 ‘식민지에 저항하는 인물’이라는 보다 선명한 이미지로 재구성합니다.따라서 〈덕혜옹주〉의 각색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원작에서 빠졌는지만 찾는 일이 아닙니다. 영화가 어떤 사건을 확대하고 어떤 시간을 압축했는지, 그 선택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덕혜옹주를 기억시키려 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영화 〈덕혜옹주〉의 각색은 한 사람의 비극적인 일대기를 그대로 옮긴 작업이라기보다, 망국·식민지·귀환이라는 역사적 기억을 중심.. 2026. 9. 17.
기억을 믿을 수 없다면 화면은 믿어도 될까: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과 영화의 차이 기억을 믿을 수 없다면 화면은 믿어도 될까: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과 영화의 차이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과 원신연 감독의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출발점이 같습니다. 과거 연쇄살인범이었던 김병수가 알츠하이머병으로 기억을 잃어가고, 딸에게 접근하는 젊은 남자를 또 다른 살인자라고 의심한다는 설정입니다.그런데 두 작품을 끝까지 따라가면 질문이 달라집니다.소설이 묻는 것은 “기억을 믿을 수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에 가깝습니다. 영화는 같은 소재를 가져오면서 “기억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눈앞의 위협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라는 스릴러로 방향을 바꿉니다.그래서 소설을 읽은 뒤 영화를 보면 단순히 몇몇 설정과 결말이 달라졌다는 느낌보다, ‘무엇을 믿게 할 것인가’에 대한 작품의 규칙 자체가 바뀌었다는.. 2026. 9. 16.
피를 팔아 지킨 가족의 무대가 바뀌다: 〈허삼관〉이 중국 소설을 한국으로 옮긴 법 피를 팔아 지킨 가족의 무대가 바뀌다: 〈허삼관〉이 중국 소설을 한국으로 옮긴 법위화(余華)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와 하정우 감독의 영화 〈허삼관〉에는 똑같이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남자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의 이름도 허삼관이고, 아들 일락을 둘러싼 친자 문제와 가난 속에서 반복되는 매혈도 이야기의 중심에 있습니다.그런데 두 작품을 나란히 놓으면 상당히 다른 이야기가 보입니다. 단순히 중국인 등장인물을 한국인으로 바꾸고 중국의 풍경을 한국의 풍경으로 옮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1995년 발표된 위화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한국 영화 〈허삼관〉은 2015년 개봉했습니다. 관련 비교 연구에서는 이 각색에서 원작의 중국 현대사와 권력에 대한 풍자가 상당 부분 줄어들고, 대신 아버지와 가족의 이야기가 전면에 .. 2026.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