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친애하는 X 후기는 한마디로, 김유정 배우의 얼굴을 빌린 아주 차갑고 집요한 파멸 멜로 서스펜스라고 정리하고 싶습니다. 예쁜 장면으로 포장했지만 속은 꽤 서늘합니다. 그래서 가볍게 틀었다가도, 인물들이 어디까지 무너지는지 끝까지 보게 되는 힘이 분명한 작품입니다.

드라마 친애하는 X 후기, 김유정의 파멸 서사가 남긴 묵직한 잔상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친애하는 X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 마음을 편하게 두는 작품은 아닙니다. 보통 멜로라고 하면 두 인물이 서로를 구원하거나, 상처를 보듬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흐름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이 정말 사랑인지, 아니면 상대의 지옥까지 함께 들어가겠다는 자기 파괴인지 계속 묻게 만듭니다.
중심에는 백아진이 있습니다. 김유정 배우가 맡은 백아진은 지옥 같은 과거를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가면을 쓴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너무나 아름답고, 말투도 차분하고, 사람을 사로잡는 힘까지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필요하면 감정까지 계산하는 차가운 면이 드러납니다. 백아진이라는 인물은 단순한 악녀라기보다, 상처와 욕망이 뒤엉켜 괴물이 되어가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솔직히 이 작품을 끝까지 보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은 김유정 배우입니다. 그동안 김유정 배우에게서 떠올리던 맑고 선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친애하는 X에서는 그 이미지가 오히려 더 무섭게 쓰입니다. 웃고 있는데 따뜻하지 않고, 울고 있는데 동정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눈빛 하나로 상대를 끌어당겼다가 밀어내는 장면들이 많아서, 대사보다 표정이 먼저 박히는 순간이 꽤 많았습니다.
특히 백아진이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보고 움직이는 장면들은 보는 맛이 있습니다. 고교 시절 심성희를 둘러싼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백아진은 직접 손을 더럽히기보다 주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상황을 자기 쪽으로 가져옵니다. 윤준서는 자신을 향한 감정을 이용당하고, 김재오는 백아진의 편에 서서 선을 넘습니다. 이 지점이 참 잔인합니다. 백아진 혼자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백아진을 사랑하거나 이해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함께 망가져 가기 때문입니다.
윤준서 역할의 김영대 배우도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결을 보여줍니다. 윤준서는 백아진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지킴이 순수한 사랑인지, 죄책감인지, 아니면 오래된 집착인지 선명하게 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장면도 많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할까 싶은 순간이 분명 있는데, 또 윤준서 입장에서 보면 백아진을 놓는 순간 자기 삶의 이유도 같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도훈 배우가 맡은 김재오는 윤준서와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윤준서가 백아진을 보호하려는 쪽이라면, 김재오는 백아진의 어둠을 같이 바라본 사람에 가깝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공유한다는 설정이 있어서 그런지, 김재오는 백아진을 단순히 동경하는 인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위험한 확신을 가진 인물로 느껴졌습니다. 이 확신이 사랑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집착처럼 보이는 점이 작품의 긴장감을 키웁니다.

이열음 배우가 맡은 레나 역시 그냥 경쟁자 역할로만 소비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백아진이 이미 만들어 놓은 판 위에 들어와 균열을 내는 인물인데, 그 균열이 단순한 질투나 스타끼리의 신경전으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레나가 등장하면서 윤준서와 백아진의 관계에도 다른 빛이 들어오고, 백아진이 쌓아 올린 이미지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더 분명하게 보입니다. 이런 인물 배치가 꽤 영리합니다.
드라마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김유정 배우의 연기 변신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끌고 갑니다.
- 윤준서, 김재오, 레나가 백아진을 비추는 거울처럼 쓰여 인물 관계가 쉽게 식지 않습니다.
- 이응복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화면과 어두운 정서가 원작 웹툰의 결을 영상으로 잘 옮깁니다.
화면 이야기도 빼놓기 어렵습니다. 친애하는 X는 잔혹한 이야기를 꽤 아름답게 찍습니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말은 화사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차갑고, 건조하고, 때로는 숨 막힐 정도로 정돈된 아름다움입니다. 백아진이 대중 앞에서 완벽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와, 혼자 남았을 때의 온도 차이가 화면 색감과 구도에서도 느껴집니다. 그래서 인물이 무너지는 장면이 더 처연하게 다가옵니다.
다만 호불호도 뚜렷할 작품입니다. 백아진은 쉽게 응원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미워하기에도 작품이 계속 과거의 상처를 보여줍니다. 이 균형이 매력인 동시에 피로감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왜 계속 저 인물을 따라가야 하지?”라고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저렇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더 무섭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중반 이후로 갈수록 백아진 주변 인물들이 하나씩 대가를 치르는 흐름은 꽤 씁쓸합니다. 백아진은 늘 가장 높은 곳을 향하지만, 그 높이가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올라갈수록 더 외로워지고, 곁에 있던 사람들은 점점 상처를 입습니다. 이 드라마의 진짜 무서운 점은 성공이 구원이 아니라 더 큰 파멸의 입구처럼 보인다는 데 있습니다.
후반부는 꽤 강하게 갑니다. 문도혁과 얽히는 흐름, 김재오와 윤준서가 맞이하는 선택, 그리고 백아진이 끝내 어떤 사람으로 남는지 보여주는 결말은 편안한 마무리와 거리가 멉니다. 누군가의 각성이나 따뜻한 회복을 기다렸다면 허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처음부터 던진 질문을 생각하면, 저는 오히려 그 차가운 결말이 더 맞는 방향이었다고 봅니다. 백아진은 쉽게 구원받을 인물이 아니고, 이 이야기는 그런 구원을 달콤하게 포장하려는 작품도 아닙니다.
원작 웹툰을 알고 보는 분들에게는 비교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드라마는 63화 분량의 원작을 12부작으로 압축하면서 인물 관계와 사건의 리듬을 영상에 맞게 다시 짰습니다. 그래서 원작의 큰 뼈대는 살리되, 드라마만의 감정선과 장면 구성이 더해졌다는 느낌이 납니다. 원작 팬 입장에서는 달라진 대목이 낯설 수 있지만, 처음 보는 분들에게는 오히려 몰입하기 좋은 속도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백아진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작품은 백아진을 불쌍하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처벌해야 할 괴물로만 몰아가지도 않습니다. 대신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은 왜 그걸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했을까”를 계속 묻습니다. 이 질문이 남기 때문에 보고 난 뒤에도 감정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좋은 의미로 찝찝합니다.

김유정, 김영대, 김도훈 세 배우의 호흡도 작품의 큰 축입니다. 백아진이 중심에 서 있고, 윤준서와 김재오가 양쪽에서 다른 방식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은 지키려 하고, 한 사람은 같이 가라앉으려 합니다. 둘 다 순애처럼 보이지만, 끝까지 보면 순애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걸 아주 집요하게 보여줍니다.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은 분들도 분명합니다. 밝은 로맨스나 사이다 전개를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물 심리, 파국으로 가는 관계, 배우의 강한 연기 변신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꽤 만족하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한 인물이 정상에 오르는 과정이 아니라, 정상에 오르기 위해 무엇을 버렸는지 보는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잘 맞습니다.
반대로 보기 전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 인물들이 건강한 관계를 맺기보다 서로를 소모시키는 장면이 많습니다.
- 어린 시절 상처와 심리적 압박을 다루기 때문에 분위기가 꽤 무겁습니다.
- 결말이 시원하게 풀리는 쪽보다 오래 곱씹게 만드는 쪽에 가깝습니다.
- 백아진을 응원하기도, 미워하기도 애매한 상태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래도 저는 친애하는 X가 꽤 기억에 남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물이 마음에 들고, 모든 전개가 친절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불편한데도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김유정 배우의 백아진은 단순히 “새로운 변신”이라는 말로 끝내기 아까울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김영대와 김도훈 배우도 그 주변을 허술하지 않게 받쳐줬습니다.
최종적으로 말하자면, 드라마 친애하는 X는 예쁜 얼굴을 한 잔혹한 심리극에 가깝습니다. 멜로를 기대하고 들어가면 서늘함에 놀랄 수 있고, 서스펜스를 기대하고 들어가면 감정의 끈적함에 더 오래 붙잡힐 수 있습니다. 보고 나서 개운한 작품은 아니지만, 백아진이라는 인물과 김유정 배우의 눈빛만큼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이런 맛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한 번쯤 제대로 달려볼 만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