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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간 순서를 뒤섞자 자매들이 살아났다: 2019년 〈작은 아씨들〉의 재구성

by 1inlife 2026. 8. 3.

시간 순서를 뒤섞자 자매들이 살아났다: 2019년 〈작은 아씨들〉의 재구성

이 글에는 2019년 영화 〈작은 아씨들〉의 결말을 포함한 주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레타 거윅의 2019년 영화 〈작은 아씨들〉이 이전 각색과 구별되는 지점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배열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영화는 네 자매의 어린 시절부터 차례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조가 뉴욕의 편집자에게 원고를 파는 성인 시점에서 출발한 뒤, 현재와 7년 전의 기억을 오갑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익숙한 고전을 새롭게 보이게 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시간 순서를 뒤섞음으로써 거윅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결말에서 인물들을 꺼내 옵니다. 베스는 ‘죽게 될 자매’, 에이미는 ‘조의 원고를 태운 철없는 아이’, 메그는 ‘결혼으로 꿈을 접은 언니’, 조는 ‘결국 결혼하는 말괄량이’라는 고정된 설명에서 벗어납니다.

자매들은 어떤 결말을 향해 이동하는 인물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에서 계속 선택하고 해석하는 사람들로 다시 살아납니다.

원작의 두 부분을 한 장면처럼 겹치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은 작가가 세 자매와 함께 성장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입니다. 초판은 1868년에 출간됐고 빠르게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이 작품이 올컷의 가족 경험을 토대로 쓰였으며, 막내 여동생 메이가 삽화를 맡았다고 설명합니다.

원작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뉩니다.

구분주요 내용중심 질문

어린 시절 남북전쟁 중 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치 가족과 네 자매의 성장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성인 시절 일, 사랑, 결혼, 경제적 현실, 베스의 병 그 꿈을 현실에서 어떻게 지킬 것인가

전통적인 성장 서사에서는 어린 시절이 원인이고 성인기의 삶이 결과가 됩니다. 독자는 자매들이 실수하고 교훈을 얻으며 어른이 되는 과정을 순서대로 따라갑니다.

거윅은 이 직선을 해체했습니다. 영화는 원작의 두 시기를 교차 편집해, 소녀들이 품었던 포부와 성인이 된 뒤 마주한 조건을 바로 옆에 놓습니다. 영화의 공식 소개 역시 조가 자신의 삶을 앞뒤로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밝힙니다.

이 구조에서 어린 시절은 성인기의 원인을 설명하는 자료가 아닙니다. 네 자매가 각자의 삶에서 잃어버렸거나 되찾고 싶어 하는 감정적 고향이 됩니다.

거윅은 성인이 된 자매들이 서로 떨어져 살아가는 시점에서 시작하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야 어린 시절을 “돌아가고 싶은 시절”로 만들고, 소녀였을 때 지녔던 용기와 야심, 유대감을 성인이 된 자매들이 어떻게 되찾는지 보여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과거와 차가운 현재는 날짜보다 빠른 설명이다

영화는 화면에 연도를 계속 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빛과 색, 공간의 밀도로 두 시간을 구분합니다.

어린 시절의 마치 집은 금빛과 갈색이 감도는 따뜻한 공간입니다. 자매들은 한 화면에 모여 있고, 대화는 서로 겹치며, 카메라는 움직이는 인물들을 따라갑니다. 반면 성인기의 장면은 상대적으로 푸르고 차갑습니다. 자매들은 뉴욕, 파리, 콩코드의 서로 다른 장소에 흩어져 있습니다.

과거현재

따뜻한 색감 차가운 색감
한집에 모인 자매들 각자의 공간에 흩어진 자매들
겹치는 말과 빠른 움직임 침묵과 멈춤
아직 열려 있는 가능성 선택의 결과와 대가
가난하지만 가득 찬 집 넓어졌지만 비어 있는 세계

두 색감은 단순한 시간 표지가 아닙니다. 따뜻한 과거는 실제보다 아름답게 남은 기억처럼 보이고, 차가운 현재는 그 기억을 잃은 뒤의 현실처럼 느껴집니다.

중요한 것은 영화가 과거를 무조건 행복한 시절로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매들은 어린 시절에도 가난과 질투, 분노, 계급 차이를 경험합니다. 다만 그 시절에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믿음과 서로의 삶에 개입할 수 있는 친밀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성인이 된 자매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편안한 과거가 아니라 가능성이 닫히기 전의 자신들입니다.

베스는 죽은 뒤에도 이야기에서 퇴장하지 않는다

비선형 구성이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는 인물은 베스입니다.

연대기대로 이야기를 배열하면 베스의 삶은 병을 앓고, 잠시 회복했다가, 다시 쇠약해져 죽는 과정이 됩니다. 그러나 2019년 영화는 두 번의 병간호를 서로 겹쳐 놓습니다.

조는 아픈 베스의 곁에서 잠이 듭니다. 잠에서 깨어 빈 침대를 발견하고 아래층으로 달려갑니다. 첫 번째 시간대에서는 베스가 식탁에 앉아 있습니다. 관객과 조는 베스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영화는 나중에 거의 같은 움직임을 반복합니다. 조가 다시 잠에서 깨어 아래층으로 내려가지만, 이번에는 베스가 없습니다.

이 장면의 고통은 베스의 죽음을 갑작스럽게 보여주는 데서 생기지 않습니다. 한때 가능했던 기적과 더는 일어나지 않는 기적을 같은 형태로 보여주는 것에서 나옵니다.

시간이 직선으로 흐른다면 죽음은 인물의 등장을 종료합니다. 그러나 영화 속 베스는 현재와 과거가 교차할 때마다 다시 웃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자매들의 대화 속에 앉습니다. 관객은 베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살아 있는 베스를 만납니다.

그래서 제목의 표현처럼, 시간 순서를 뒤섞자 베스는 다시 살아납니다. 부활은 사건이 아니라 편집이 만들어 낸 기억의 형식입니다.

에이미는 철없는 막내가 아니라 가장 일찍 현실을 이해한 사람이다

에이미는 〈작은 아씨들〉의 각색에서 오랫동안 불리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어린 에이미가 조의 원고를 태우는 장면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순서대로 보면 관객은 먼저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에이미를 만나고, 그 인상을 품은 채 성인이 된 에이미를 평가하게 됩니다.

2019년 영화는 성인 에이미를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함께 보여줍니다. 관객은 원고를 태운 아이뿐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한계, 계급과 결혼의 경제적 의미를 계산하는 성인 여성을 동시에 봅니다.

이 배열은 에이미의 어린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대신 한 번의 잘못이 그 사람의 최종 정의가 되는 것을 막습니다.

특히 에이미가 로리에게 결혼은 여성에게 경제적 계약이기도 하다고 설명하는 장면은 인물을 크게 바꿉니다. 거윅은 이 대사가 메릴 스트립과 나눈 대화에서 발전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기혼 여성의 재산과 자녀에 대한 권리가 크게 제약됐다는 현실을 관객이 이해해야 에이미의 선택도 제대로 보인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에이미가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부유한 남성과 결혼하려 한다고 말할 때, 영화는 이를 허영심만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천재의 수준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을 냉정하게 인정하며, 여성이 독립적으로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사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를 계산합니다.

조와 에이미의 차이도 선명해집니다.

  • 는 창작을 위해 경제적 불확실성을 감수합니다.
  • 에이미는 경제적 조건을 무시한 창작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려 하지만, 위험을 감당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에이미가 로리와 맺어지는 결말도 조가 거절한 남자를 대신 차지한 결과로 축소되지 않습니다. 성인이 된 두 사람이 서로의 결함과 현실을 확인한 뒤 선택한 관계가 됩니다.

메그의 결혼은 꿈의 포기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선택이다

메그는 배우가 되고 싶어 하지만 존 브룩과 결혼해 가정을 꾸립니다. 겉으로 보면 야심을 내려놓고 전통적인 삶을 선택한 인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영화는 메그의 삶을 조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메그가 가난한 결혼생활에서 값비싼 천을 사고 후회하는 장면은 사랑만으로 경제적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메그는 자신이 선택한 가정과 아이들을 단순한 타협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메그가 조에게 자신의 꿈은 조의 꿈과 다르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영화의 관점이 드러납니다.

여성의 해방은 모든 여성이 같은 삶을 선택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선택을 실제 선택으로 존중하는 데 있습니다.

시간을 교차한 구성 덕분에 관객은 무도회장에서 화려한 생활을 동경했던 소녀와, 제한된 형편 속에서 가정을 지키려는 성인 메그를 함께 봅니다. 둘 중 하나가 진짜 메그인 것이 아닙니다. 욕망이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욕망의 우선순위가 달라졌고, 그 선택에는 만족과 손실이 함께 존재합니다.

조의 이야기는 결혼이 아니라 저작권으로 끝난다

영화는 조가 출판사 문 앞에 선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원작의 첫 문장인 “선물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가 아니야”보다 먼저 등장하는 것은 가족도 로리도 아닌 노동하는 작가 조입니다.

이 선택은 영화 전체의 중심을 성장과 결혼에서 창작과 소유권으로 이동시킵니다. 영화평론지 《필름 코멘트》는 거윅이 원작의 두 시기를 조의 작가적 여정을 중심으로 재배열했다고 분석합니다. 이 구조에서는 소녀 시절의 꿈과 성인 여성이 마주한 직업적 제약이 직접 충돌합니다.

결말에서는 두 종류의 이야기가 겹쳐집니다.

하나는 조가 프리드리히 베어를 붙잡기 위해 기차역으로 달려가는 로맨스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가 편집자와 원고료와 저작권을 협상하고, 인쇄소에서 자신의 책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어느 한쪽만을 명백한 현실이라고 확정하지 않습니다. 조의 결혼은 출판사가 요구한 결말일 수도 있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반면 조가 책의 저작권과 수익 조건을 협상하고 완성된 책을 손에 넣는 장면은 분명한 성취로 강조됩니다.

거윅은 관객이 조의 출간을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의 입맞춤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얻는” 결말이 아니라, 여자가 책을 얻는 결말을 만든 셈입니다.

역사가협회에 실린 분석도 영화가 가족의 정원이나 결혼 약속보다 조가 완성된 〈작은 아씨들〉을 손에 드는 순간을 마지막 성취로 제시한다고 평가합니다. 영화 속 조는 자신의 이야기와 보수, 저작권을 두고 협상하며 성공의 주인이 됩니다.

비선형 구조가 네 자매를 동등하게 만드는 방법

2019년 영화에서 조는 여전히 중심인물이지만, 다른 자매들은 조의 성장을 돕기 위한 교훈으로만 소비되지 않습니다.

인물쉽게 고정되는 이미지영화가 되돌려 준 복잡성

메그 결혼으로 꿈을 포기한 언니 다른 형태의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한 여성
결혼을 거부하는 천재 작가 독립과 외로움, 예술과 생계 사이에서 흔들리는 창작자
베스 죽음으로 가족을 성장시키는 희생자 가족의 기억과 일상을 구성하는 지속적인 존재
에이미 질투심 많은 막내 예술, 돈, 결혼의 조건을 냉정하게 이해하는 현실주의자

연대기적 이야기에서는 어린 인물이 미숙하고 성인 인물이 완성된 존재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두 시간을 오가는 영화에서는 성장 전과 후가 위계적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성인 조에게는 소녀 조의 대담함이 필요하고, 어린 에이미의 행동은 성인 에이미의 판단을 통해 다시 해석됩니다. 결혼한 메그 안에는 여전히 무도회를 꿈꾸던 소녀가 남아 있으며, 죽은 베스는 살아 있던 시간과 함께 존재합니다.

자매들은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시기의 자신을 동시에 지닌 채 살아갑니다.

시간 재구성이 항상 친절한 것은 아니다

비선형 구조에는 대가도 있습니다.

원작을 읽지 않았거나 이전 각색을 보지 않은 관객은 초반에 두 시기를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같은 배우들이 어린 시절과 성인기를 모두 연기하고, 영화가 사건의 연도를 자주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편집자 닉 후이는 이 구조가 처음부터 각본에 포함돼 있었으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장면을 연대순으로 다시 붙여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장면의 의미와 감정이 두 시간대의 연결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원작의 순차적 성장을 중요하게 여기는 독자에게는 자매들이 시행착오를 통해 천천히 변하는 과정이 압축됐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원작의 도덕적·종교적 성장 서사보다 현대적인 자아실현과 경제적 독립이 더 앞에 놓였다는 비판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원작을 현재의 가치에 맞춰 단순히 고쳐 쓴 결과라기보다, 원작 속에 이미 존재하던 모순을 새로운 구조로 드러낸 선택에 가깝습니다.

자매들은 사랑을 원하면서도 독립을 원합니다. 예술을 추구하면서도 돈이 필요합니다. 가족을 떠나야 성장할 수 있지만, 떠난 뒤에는 다시 가족을 그리워합니다. 시간의 교차는 이 상반된 감정을 하나의 장면 안에 함께 놓습니다.

〈작은 아씨들〉은 과거를 복원한 영화가 아니다

2019년 〈작은 아씨들〉은 19세기의 이야기를 원래 모습 그대로 재현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전을 기억하는 방식 자체를 영화의 주제로 삼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기억은 순서대로 재생되지 않습니다. 현재의 사건이 과거의 한 장면을 불러오고, 과거의 감정이 지금 내린 선택의 의미를 바꿉니다. 거윅의 비선형 구성은 바로 이 기억의 움직임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과거는 끝난 시간이 아닙니다.

  • 베스는 죽었지만 계속 가족 안에 존재합니다.
  • 메그의 꿈은 바뀌었지만 사라지지 않습니다.
  • 에이미의 과오는 성장한 뒤에도 남지만 그를 전부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 조의 사랑 이야기는 끝날 수 있어도 조가 쓴 이야기는 새롭게 시작됩니다.

시간 순서를 뒤섞은 결과, 관객은 자매들의 미래를 궁금해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미래가 각자의 삶을 충분히 설명하는지 묻게 됩니다.

거윅이 살려낸 것은 원작의 사건이 아닙니다. 결혼, 죽음, 성공 같은 결말 뒤에 가려져 있던 네 사람의 욕망과 모순입니다. 2019년 〈작은 아씨들〉에서 자매들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이유는 새로운 운명을 부여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한 시점의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성장은 과거의 자신과 작별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과거의 자신을 현재로 불러와, 앞으로 살아갈 힘으로 다시 편집하는 일입니다.